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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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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연세봄정신과
댓글 0건 조회 1,481회 작성일 20-11-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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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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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픽사베이 



저장강박증이란,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집착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책, 옷, 신문, 박스... 소모품으로 쓰고 버려야 하는 것들도 다 쌓아두고 모아두는 것이지요.
이들의 집은 산더미처럼 쌓인 물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냄새와 악취, 벌레까지 기어 다니는데도 물건을 치우려 하면 보물이라도 뺏기는 것처럼 크게 화를 냅니다.
버린 만큼 또 새로 무언가를 주워오기도 하니 무한 반복이 되지요.

저장강박은 전두엽의 가치 판단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에 문제가 생겨서 발병합니다.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이고 어떤 것이 쓸모없는 물건인지 결정을 못 하는 겁니다.
이러한 강박은 ‘혹시 중요한 물건인데 나중에 필요해지면 어쩌지?’라는 불안에서 출발합니다.
세로토닌의 불균형, 분비장애 때문에 생긴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저장강박증이 노인분들이나 중년에서 많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10대 후반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때부터 쌓인 물건이 수십 년이 지나면 도저히 놔둘 수 없을 만큼 축적되는 것이지요.

요새는 데이터나 파일, 사진을 지우지 못하는 디지털 저장강박증도 유행입니다.
수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정리하지 못해 이들의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항상 공간이 모자랍니다.
같은 내용의 수정, 재수정, 재재수정, 최종수정ppt 파일을 하나도 지우지 못하고 혹시나 해서 다 모아두는 것도 불안하기 때문에 생긴 행동이지요.

냉장고 안의 음식물을 쓰레기가 될 때까지 버리지 못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식빵, 계란들이 무더기로 나오는 것도 저장강박을 의심할 수 있는 사례가 됩니다. 



이들은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치료에 대한 동기와 병식이 없습니다.
다른 가족이 부탁과 회유, 불만을 표출해도 인정하지 않고 저항을 보이지요.
잦은 시비와 갈등의 원인이 되지만 정신과에 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말 억지로 병원에 온다 해도 상담에 귀를 기울이지도, 약물도 드시려 하지 않으십니다. 

만약 내가 저장강박증 환자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은 왜 이다지도 쓸모없는 물건에 집착하는 걸까요.
 


1. 물건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제가 상담한 환자의 사례 중, 6.25 시절에 태어나 아주 오랫동안 굶주리며 사신 할머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음식 귀한 줄 알아야 해’, ‘굶어 죽은 친구가 여럿이야’ 라는 말을 아직도 하시면서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 캔 음료수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굶주림과 가난에 대한 불안이 할머님을 아직도 괴롭히고 있었던 거지요.

집안이 신문과 잡지, 낡은 책으로 꽉 차있는 50대 남성분은 중학교까지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배움에 대한 억울함과 한 같은 감정이 낡은 책 속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마치 무언가의 끈을,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쌓아두고 있었습니다.
 

2. 단계적이고 점진적으로 접근할 것

왜 문제가 되는지부터 설득해야 합니다.
‘아버지, 쌓아둔 물건 때문에 손자가 걸려 넘어져서 다쳤어요.’ ‘집이 점점 좁아져서 방 하나를 아예 쓸 수가 없어요.’ ‘먼지가 계속 쌓이고 악취 때문에 날파리가 너무 심해요’ 등의 의견전달로 물건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라 먼저 이차적이고 간접적인 피해를 호소해야 합니다. 

우선 버리는 게 아니라 물건을 조금 옮기거나 정리해보시도록 유도해보세요.
그리고 옮기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리스트를 만들어보게 합니다.
중요한 우선순위에 대해서 환기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소거법과 단계적인 노출로 인해 문제 인식과 인지의 오류를 교정하고 행동의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3. 물건을 버리기 전에 타협을 시도한다.


우리가 보기엔 쓰레기이지만 환자에게는 소중한 재산이기에 물건의 일부를 버리고자 한다면 그 보상을 제안해야 합니다.
이만큼을 치우거나 버리면 그 대가로 환자가 원하는 다른 물건(돈, 귀금속 등 크기가 작은 것들...)으로 등가교환을 해줘야 합니다.

물론 교환의 의미가 무색할 만큼 가치판단의 소실이 진행된 경우도 있지만(천만원을 준다고 해도 종이상자가 더 좋다며 포기하지 않는다거나... 이럴 경우는 단순 저장강박증이 아니라 심한 우울증이나 치매, 조현병 등을 고려해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금전적인 현실감각이 남아 있기 때문에 타협을 시도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미련과 집착, 불안과 강박.
마음의 잔재와 내쳐진 것들.

무엇이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 우리는 매일 선택하고 결정하며 살아갑니다.
저장강박증 환자들이 모아둔 헌 옷과 쓰레기들, 잡동사니들. 잊히고 쇠락되어가는 모습이 무언가와 겹쳐 보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시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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